나만의 여행을 위해서...
몇일 전에 입적하신 법정대사님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을 실천하셨다. 입적하시면서도 걱정이 남으셔서 장례식을 간소하게 하라는 등의 몇가지 유언까지 남기셨다. 아마도 우리네 인생사처럼 불가(佛家)에서도 장례에 따른 사치와 허욕이 있어 경계하고자 그러셨던 것 같다. 25년전 스님이 바랑하나 둘러메고 네팔과 인도를 여행하셨을 때 보았던 그 소박함이 떠오른다. 여행 후 여행기 ‘인도기행’을 쓰셔서 여행가로서 기질을 보이기도 하셨다.
스님의 ‘미리 쓰는 유서’를 보면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그리고 몇 해 전에 타락과 부패의 대명사였던 고급요정인 성북동 대원각을 시주받아 현재의 길상사로 모두에게 개방되기까지 마음 고생이 심하셨다고 한다. 대원각과 관련된 오욕칠정을 무소유와 청정함으로 무장한 대사님의 법력으로 소멸시키시고 도심 속의 맑고 향기로운 도량으로 사부 대중에게 문을 활짝 열어 주셨다.
무소유 철학은 2500년 전에 시작된 불교의 공(空) 사상에 뿌리를 두었다고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같은 맥락으로 윤회되고 있다. 인도에서 가장 부를 많이 축적한 사람들 중에 꽤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자라투스트라 拜火敎)이다. 이들의 종교관 역시 무소유를 원칙으로 하며, 철저한 무소유를 추구하는 나체파(옷 조차도 걸치지 않는)와 일반적인 백의파(하얀 옷을 입는)로 구분한다. 심지어 이들은 입에 마스크를 착용하여 혹시나 입으로 날아드는 작은 생명까지 존중하는 등 청빈과 생명 존중에 따른 어려운 수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현재 인도의 최고 부자를 비롯해서 금융업, 대부업 등의 최고점에는 이들 배화교 사람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이유는 사람들의 생각이 배화교도들은 무소유를 원칙으로 하기에 욕심과 거짓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종교적인 신뢰로 말미암아 배화교 사람들의 사업은 번창하고 재물은 쌓이기 때문에 '비워야 채울 수 있다'라는 법어는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현대사회는 끝없는 욕심을 요구한다. 오늘도 수익을 높이기 위해 고객에 최대의 서비스를 해야 하고 현지 지상비와 항공사에 대한 협상을 하기위해 목숨을 걸어야 살 수 있다. 그리고 동종업계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나누는 협력보다는 갑과 을로 나누고 그것도 모자라 슈퍼 갑 혹은 울트라 갑으로 구분하여 군림하려는 욕심이 활개를 치니 유치하기도 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욕심들 속에 어떤 이는 얼마나 힘들면 스스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했다.
원래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힘들게 살게끔 설계되어 있기에, 참고 견뎌야한다고는 하지만 욕심이 난무하는 굴레 속의 고통은 너무 심하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의 직업이 여행사이기에 가끔은 훌훌 털고 무소유의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다. 자유로운 여행인이 되어 사회의 지위를 떠난 여행자를 인솔하여 천의 얼굴이라 불리는 인도를 여행하고, 넓은 티벳 고원과 높은 히말라야를 여행하면 동안거(冬安居) 마친 스님의 민머리에 부는 시원한 봄바람의 자유가 이러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나만의 여행을 위해서 사바세계를 혼자서 떠나보자. 우리보다 발전된 나라보다 많이 낙후되고 여행하기 힘든 나라를 여행하자. 문명을 떠나 한달 동안 걸어보고 굶기도 해 보자. 마음껏 마시기도 해보고 모르는 민족과 어울려 밤새도록 춤을 춰보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오랜 옛날 부처님이 말씀하신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분별이 역시 이러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사바세계에서 무소유의 기쁨도 알게 되고 관과 수의는 물론 흔한 화환 하나 없이 시신만 달랑 떠나는 법정대사님의 자유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만의 여행을 위해서 ....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