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맛으로 먹지 않는다.
혜초여행사 대표이사 석 채 언
작가 박완서 선생님과 티벳을 여행할 때 서북지역의 팅그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4,000m가 넘는 티벳 고원의 횡단 여행은 고산병과 함께 노령의 여행자들에게 심한 피로감을 더했다. 힘든 여정으로 인해 준비된 음식은 먹기는 커녕 쳐다보기 조차 어려운 지경이었다.
우리의 식사를 준비한 식당의 주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음식도 아까운 마음에, 때마침 우리를 구경하러(?) 모여든 티벳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중국인 여주인에게 부탁을 했다. 식당 주인은 혼쾌히 수락을 하고 음식을 들고 나가더니 식당 문 밖으로 음식을 획 던져 버린다. 그리고 버려진 그 음식을 먼저 줍기 위해 많은 티벳 사람들은 서로 뒤엉켜 혼란스럽다. 상식을 초월한 이 놀라운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너무나 당연한 행위를 한 중국인 여주인은 우리의 항의를 오히려 이상스러워 했다. 여행을 마치고 이 사건으로 주제로 박완서님의 ‘모독’이라는 작품이 출간되었다.
1984년 겨울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기 위해 나는 지금은 MBC 카메라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선배와 함께 선발대로 네팔에 갔다. 본대가 오기 전에 5톤 가량의 식량과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한 달간 카트만두 시장과 등산 장비점을 경험 많은 선배를 따라 온종일 돌아 다녔야 했다. 어느 더운 날 한낮에 허기를 달래려 시장의 허름한 국수집에 들어갔다. 우리는 시끄러운 시장통의 5평 남짓한, 매우 지저분한 그 식당에서 고약한 냄새와 함께 파리를 쫒아가며 커리 향이 짙은 국수를 먹어야 했다. 나도 비위가 강한 편이지만 정말 먹기가 어려웠다. 땀을 흘려가며 국물까지 후룩 후룩 마시는 선배에게 맛이 있느냐고 물어 봤다. 하지만 선배는 ‘너는 밥을 맛으로 먹냐? 오늘 하루 버틸려면 먹어둬!’ 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할 뿐이었다.
사실 그때에는 임선배의 말 뜻을 잘 몰랐다. 하지만 그 이후 혹독한 기후와 타 민족의 탄압을 받으며 살아가는 티벳인과 생존을 위해서라면 품격과 자존심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인도의 불가촉민(不可觸民), 그리고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생명을 걸고 외국 등반대의 짐을 묵묵히 운반하는 고소포터(셀파)들 역시 밥을 맛으로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여행사업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일했고 땀을 흘렸으며, 때로는 같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올랐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그들처럼 ‘밥은 맛으로 먹지 않는다.’라는 만다라를 알았다. 여행사업을 하면서 IMF, 사스, 티벳사태, 고유가(油價), 고환율, 경제위기, 신종풀루 등 웬만한 힘든 일을 다 겪어봤고, 어려움을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때마다 나는 견뎠고 또 버티어 왔다. 여행업계의 후배들이 찾아와 어려움을 하소연하면 쓴 소주를 사주며 늘 스스로에게 얘기하듯이 온 힘을 다해 견디고 버텨야 한다고 조언 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가파른 암벽도 나오고 얼어붙은 빙벽들도 나온다. 눈보라가 몰아쳐 폭풍설에 휩싸일 수도 있고, 낙석과 추락으로 팔 다리가 부러 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등반을 포기 한다면 정상은 절대 갈 수가 없다. 찬밥이든 던져진 밥이든 먹어야 버틸 수 있고, 어떤 어려움이든 견디는 사람에게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