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오라고 하지 않아도, 꾸미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가는 나라 그리스!
까마득한 옛날, 신이 있었다. 그리고 영웅이 있었고 인간이 있었다. 신들을 숭배한다는 구실로, 인간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수많은 신전과 조각들과 그림들 그리고 삶의 터전들을 쌓고, 올리고 쪼개고 붙이고 만들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전쟁, 그 보다 더 끔찍한 자연재해로 한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파괴되었다. 그 땅 위에 다시 문명은 꿈틀거리고 역사는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는 또 다시 그 파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꾸 반성하고 뒤돌아보게 하는 여행길이었다.
감탄과 씁쓸함이, 놀라움과 쓸쓸함이, 그리고 경이로움과 아쉬움이 함께하는 그리스 유적지.
무너진 돌 더미 속에서 꿋꿋히 버티고 있는 몇 개 남을 기둥을 통해 신들을 위한 신전을 보고 과거의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플라타 지역, 케라메이코스 그리고 메르쿠리를 상기할 수 있는 기념관을 들러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카잔차키스 박물관과 탁트인 그의 묘지를 방문함으써 그 아쉬움과 갈증을 조금은 가실 수 있었다. 여행동안 계속 들은 희랍인 조르바의 주제곡, 나나무스쿠리의 노래,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노래들을 통해 그리스가 한층 가깝게 느껴졌다.
여행과 첫날과 끝날을 잘 열고, 마무리 하게 한, 과거 화려한 파르테논의 도시 아테네는 지금은 빛바랜 소박함이 느껴졌다. 보슬보슬 가랑비를 맞으며 찾아간 코린토스는 한적한 마을 산책길이 아폴론 신전과 고대 아고라 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없는 병도 낫게 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스크레피오스 신전을 찾아간 에피다브로스. 역시 가장 좋은 의술은 운동과 음악 그리고 숙면이 함께 해야 된다고 한번 더 되새기게 했다. 황금의 도시, 미케네 왕궁터에서 만난 한 무리의 학생들과 돌 덩어리 사이 사이를 비집고 나온 보라색 시크라멘과 노라색 샤프란 꽃이 정겨웠다. 평화를 위한 올림픽 축제의 도시, 올림피아의 돌더미를 비집고, 우리는 달렸고 올리브잎 관도 쓰고 남 부럽지 않게 폼나게 사진도 찍었다. 나팍토스 마을에서 세르반테스를 멀리 바라보며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함께, 항구로 마실 나드리 온 사람들과 한 무리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나약함과 불안은 의지할 무언가를 찾는다. 신성한 도시 델포이, 그리고 벼랑 위에 힘겹게 세워진 메테오라 수도원들이 묘하게 겹쳐서 떠오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테살로키니 해변에서 말을 타고 힘차게 비상하고 있지만, 피지도 못한 그의 아들은 베르기니 왕묘 안에서 쓸쓸히 누워있다. 세계를 지배한 대제국 마케도니아도 지금은 그저 평화로운 넓은 평야 위의 초라한 도시일 뿐이다. 유적지 입구에서 마신 석류의 달콤 떨뜨름한 맛이 혀 끝에 감돈다. 겹겹이 쌓아 올린 성벽으로 꼭꼭 숨겨진 중세의 도시 로도스에서의 에스프레소 한잔과, 돌계단을 굽이굽이 걸어 올라간 린도스 아크로폴리스 위에서 하얀 마을과 푸른 바다를 눈에 넣고 내려오면서 마신 시원한 한잔의 오렌지 주스가 신들의 음료 넥타르 보다 못하지는 않으리라.
제우스가 태어난 섬, 카잔차키스가 사랑한 섬 크레타! 신화 속 미노아 문명은 현실이 되어 땅 속에서 베일을 벗었다. 우리의 문명은 계속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고 파괴되는 과정을 불교의 윤회처럼 끝없이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그 시절의 문명이 현재의 문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중해의 찬 바람을 마주한 베네치아 성벽 위에서 카잔차키스의 자유를 잠시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레타는 사람들을 끄는 마력이 있다.
자연이 만든 파란 바다와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그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이 만든 집들과 골목이 산토리니를 그리스 최고의 핫 스팟으로 만들었다. 변화와 개발과 확장보다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검소함이 화려한 관광객들을 말없이 끌어 들이는 묘책이 아니었을까. 와인 잔을 기울이며 함께 바라본 지는 해는, 이제 이 나들이의 끝이 다가 왔음을 알리는 듯 아련한 아쉬움을 주었다. 차가워지는 저녁 공기 탓이었을까? 산토리니를 떠나기 전 방문했던 아크로티리의 유적지는 자연 앞에서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슬픈 뒷모습이 연상되어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그 곳은 낭만의 섬, 산토리니가 아니었던가.
함께한 멋진 여행 친구들이 있었고, 눈과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게 한 문명의 흔적과 떠난 사람들의 자취가 있었고, 그리고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았을 정도로 우리의 행복과 에너지를 충전 시켜준 맛난 음식과 와인이 있었기에, 이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한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음에 감사한다. 이 곳에 이 시기에 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준 해초와, 정성과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가이드님과 인솔자님 그리고 함께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에프하리스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