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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획] 알프스 대장정 트레킹 17일
작성일 2022.07.14
작성자 이*원
상품/지역
트레킹유럽
알프스를 동에서 서로 훑으며 걸었다!

P.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다. 어쩌면 여독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2022년 6월 24일부터 7월 10일까지 ‘알프스 대장정 17일’을 다녀왔다. 예전부터 꼭 한 번, 아니 기회가 되면 여러 번 가고 싶은 곳이었다. 진작에 이용대의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란 책을 사서 여러 번 읽었다. 조금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재미있게 읽히고, 몇 번씩 읽게 된다. COVID-19로 해외로 못 나가고 있을 때, 국내 100대 명산을 완등했고, 라인홀트 메스너의 <모험으로의 출발>, <검은 고독 흰 고독>, 헤르만 불의 <8000미터 위와 아래>, 안데를 헤크마이어의 <알프스의 3대 북벽>, 김영도의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거칠부의 <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 등을 읽으며 심신을 다독이고 있었다. ‘알피니즘’이 탄생한 지역, 알프스! 나는 드디어 그곳을 살짝 맛보기로 다녀왔다.

사실 2020년 요맘때쯤 알프스 3대 미봉과 TMB를 연달아 엮어서 가려던 계획이 코로나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는데,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2022년에 재개한 ‘알프스 대장정 17일’을 날름 예약했다. 더군다나 인솔자가 한필석 상무이시다. 하지만, 가기 전까지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고(굳이 세세한 내용과 과정을 밝히고 싶진 않다), 기어코 매형과 처남인 나는 함께 가게 되었다.

0. 난 약간 특이한 버릇이 있다. 내가 기획하고 계획하는 여행이라면, 그 여행 지역을 거의 다녀온 사람처럼 꼼꼼하게 사전에 탐색하지만, 그렇지 않은 여행은 그저 묻어갈 수 있기에 그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얼추 큰 그림만 그리고 간다. 이번 트래킹은 나라 이름과 머무는 도시만 알고 갔다. 가는 곳의 이름이 생소하고, 외워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단 가서 보고 느끼고 즐기기에 집중한 다음, 돌아온 후 여행 계획서를 다시 보면서 퍼즐을 맞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그냥 먼저 보고 느끼기’도 나름 의미가 있다.

1. 기나긴 비행시간, 버스를 타고 한밤에 첫 도착한 곳은 오스트리아 할슈타드, 밤새 뇌우가 내렸지만 아침에는 상쾌하게 개었고, 은은하고 멋진 오래된 동네다. 잠깐 스쳐 가기에는 너무 아쉬운 곳이다. 첫 번째 간 곳은 샤프베르크 정상. 뭐 이런 곳이 있담! 야생화 피어 있는 정상 구릉, 멋진 산장, 호수, 멀리 넓게 탁 트인 풍광... ‘처음부터 이러면 앞으로는 어떤 풍광이 이를 압도하고 계속 펼쳐질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미리 결과부터 말하면) 하루하루 비교불가의 독특하고 황홀한 풍광의 연속이었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담배 한 대도 피고.

다음날, 창밖 경치를 보며 알파인 로드를 따라 오르고, 전망대. 꼬불꼬불한 도로에 바이크족들도 많다. 할리족은 몇 명 못 봤고, 대부분 BMW족이다. 위아래 두꺼운 가죽 쟈켓과 바지, 부츠를 신고 R1250 GS 머신을 모는 사람들. 부럽다. 나도 2종 소형 면허 있는데... 그로스글로크너를 보며 트래킹. 정상을 보며 스케치.

이탈리아로 넘어와 돌로미테 CIR 트래킹. 이거 뭐야, 이런 바위산들이 있다니! 볼수록 묘하다. 기기묘묘의 연속.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답다.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고. 다음날, 미주리나 호숫가에서 멍, 할아버지 한 분과 얘기하고(?) 사진 한 컷. 그 동네 산을 닮으신 분 같다. 곧이어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를 걷는 코스, 걸작이다. 스케치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나는 이 후기를 쓰면서 풍광을 형용, 묘사할 수 있는 내 어휘의 한계를 알았다). 이때 할 말은 이것밖에 생각 안 난다. ‘가서 보시라’. 사진이나 영상 말고, 직접 가서 두 눈으로 보시라!

그 다음 날은 세체다 트래킹. 초원과 어우러진 색다른 풍광, 멋있네~~ (점점 어휘력이 떨어진다) 난 좀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어 다다음주인 7월 26일 또 돌로미테로 간다. [돌로미테] 알타비아 NO.1 트래킹 11일.

2. 생 모리츠에 왔다. 스위스. 실스마리아 파노라마 트래킹. 산 정상 부근에 눈이 보인다. 빙하도 볼 수 있고. 뾰족뾰족, 산세가 다르다. 멀리 호숫가 보며 걷고. 내려와 시내를 둘러보고. 다음날은 하루종일 빙하특급열차를 탔다. 타기 전 매형과 나는 포터 역할, 여행할 때 무거운 짐과 캐리어를 가지고 다닌다면 포터한테 꼭 팁 주시라. 힘깨나 쓰는 나도 아침부터 땀 흘렸다. SB.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지루하지 않게 8시간 즐겁게 체르마트로 이동.

짠~~~(51년 된 친구 녀석이 가끔 쓰는 단어다) 나를 반겨준 것은 마테호른! 직접 보니 정말 이쁘다. 자체로 예쁜 것인지, 보는 사람이 예쁘니까 예쁜 것인지 따지지 말자. 그냥 예쁘다. 마차푸차레와 비교하지 말지어다. 둘 다 예쁠 뿐이다. 나는 얘와 3일 동안 동침했다. 숙소 창밖으로 마테호른이 보였다. 잠들 때 보고, 중간에 별과 함께 보고, 아침에 일어나자 보고. 미녀는 세월 따라 다르겠지만, 얘는 한결같을 것이다. 실컷 보며 스케치!

마테호른 파라다이스 전망대, 설산 등산객과 스키어들, 눈 위에 올라 거닐고.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보인다. 가이드의 재촉하는 소리, 그들은 잠시 머물렀다가 내려가겠지. 우리는 걸어내려갈건데... 참 안 됐다. 관광과 트래킹이 대비되는 순간이다. 글레시어 파라다이스 트래킹, 마테호른을 다각도로 돌아보며 걸었다. 나중에 본 뒤태도 서늘하게 매력적이다. 어디를 보던, 어떻게 보던 예쁘다. 다음날은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리펠제 트레킹한 후 그린델발트. ‘아이거 북벽’이 보인다. 선입견이 있는지 음침하고 싸늘하다.

융프라우요흐 전망대, 3시간 체류. 위 산장까지 다녀올 사람은 가보라고 해서 5인방은 즉시 출발, 발이 푹푹 빠지는 습설을 한참 걸어 산장 도착(산장에 들어가려면 등산화를 벗으시기 바랍니다), 맥주 한 잔 먹고 하산, 무시무시한 크래바스도 직접 보고. 점심 먹고 아이거 트래킹. 비도 살짝 맞고. 가까이서 본 아이거 북벽, 벽에 올라타면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다고 직접 올라가 보신 대장님의 설명을 상세하게 듣고. 책과 영상으로 읽고 본 북벽과 직접 본 북벽은 느낌 자체가 다르다.

다음날은 피르스트에 올라가 정통 알프스 트레킹 시작. 호수를 지나 쉼터가 보이는 곳까지 안 쉬고 계속 제일 먼저 올라갔다(내가 제일 앞서간 유일한 곳이다). 숨이 턱턱 막히면서도 눈물이 펑펑 났다. 소리 내어 실컷 울었다(다들 모르셨겠지). 울 만한 일이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바람에 실려 보냈다. 그리고, 기도했다.

스위스의 마지막 날, 뮈렌 트레킹을 잠시 하고 인터라켄 한식당, 오랜만에 보는 닭갈비에 참이슬 후레쉬(이 동네에서는 양주라 한 병에 3만원 정도) 1병 반을 입안에 털어 넣고 버스 타고 프랑스 샤모니로 이동.

3. 샤모니, 도시 이름이 친숙하다. 현지 산악 가이드를 만나 락블랑 트레킹. 프랑스 알프스의 풍광은 지금까지 본 알프스의 절묘한 조합같다. 두루뭉술 눈이 덮여있기도 하고, 날카로운 산세도 있고. 바위산도 있고. 정반합인가? 프랑스의 괜한 저력을 유추해본다. 그 다음날은 프랑스 최고의 전망대라고 하는 에귀 디 미디 전망대에 올라 실컷 감탄하고, 몽땅베르 트레킹. 이 역시 멋진 트래킹 코스다. 저 멀리 그랑드 조라스 북벽을 봤다. 이것으로 알프스 3대 북벽을 직접 다 봤다. 보기만 했다. 굳이 올라갈 생각을 하지도 않으며, 올라갈 능력도 되지 않는다. 본 것 그 자체만으로도 왠지 뿌듯하다. 샤모니 근처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1주일을 체류해야 한단다. 내년을 기약해본다. 나를 ‘원 헌드러드, 투 헌드러드’라고 부르던 현지 가이드 형님도 다시 볼 수 있으려나. BMW R1250 GS가 그 분의 자가용이다.

E-1. 휴~~~ 긴 시간의 경험을 짧게 정제하며 글로 쓰자니 우습다. 마지막 날은 낮부터 맥주를 마셨고, 잘 끝냈다는 기분에 춤도 추고 마냥 좋아라 했다.

나한테 누군가가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계속 질문하면 자기 손가락 깨물기를 시키고 싶다. 물었을 때 어느 손가락이 제일 아프고 안 아플 것 같냐고. 희안하게도 비슷한 풍광이 별로 없다. 다들 개성 넘치고 독특하다. 네팔 히말라야의 장엄함과 숭고함과도 다르고, 아기자기한 우리 산하와도 물론 다르다. 알프스가 알프스인 이유이고, 사람들이 가는 이유일 것이다. 알프스가 거기 있으니까!

많은 표지판을 봤지만, 방향 표시와 시간만 적혀있다. 거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거리 따위는 신경 쓰지 말라는 소리인가? 방향대로 걷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그 시간이 우리를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준다. 사실 인생사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도 많다. 그 이치를 깨달아 보라는 말인가 보다.

인간은 높은 곳 되게 좋아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본능인가 보다. 인간만이 거주지, 서식지를 떠나 목숨 걸고 높은 산에 오르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등반가는 힘들게 오른 정상에 서서 잠시 사방을 둘러보는 특권을 누리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은 곤돌라와 케이블카, 열차로 편하게 올라 호사를 누린다. 전망대나 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보기! 트래커들은 몇 시간 걷으면서 온몸으로 보고 느끼고. 할아버지, 할머니, 내 또래의 중장년층, 어린 아이들... 트래킹이 일상화되어 있는 사람들. 분명 그윽한 사람들일 것이다.

E-2. 우리 팀은 19명이었다. 좀 많다. 네팔 트래킹처럼 한솥밥을 먹는 사이는 아니다. 뉴질랜드 트래킹처럼 따로 조리한 음식을 각자 먹는다. 그래서인가? 개개인의 삶의 궤적은 모른다. 묻지도 않아야 한다. 물어선 안 된다. 불문율이다. 그냥 이 나이 먹어 단지 이곳에 개별적으로 오고 싶어 왔다. 그리곤 한 팀이 되었다. 한 팀이다. 정해진 일정을 마칠 때까지 한 팀이다. 상호의존성, 희박하다. 소속감, 단지 잠깐이다. 연대감, 거의 없다. 지속성? 순간이다. 그래도 17일 동안 한 팀이지 않은가? 내가 속한 팀을 위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와야 한다. 내가 조금 도왔다면 그것은 우리 팀을 위한 것일 뿐이다.

‘삶이 곧 공부요, 공부가 곧 삶인 인생’을 철저하게 살진 못했어도, 언저리에서 헤맨 나는 트래킹을 통해 또 배운다. 이 트래킹도 삶의 조각이며 일부이고, 공부이며 인생이다. ‘삶에 대한 반성’, ‘반성하며 살아가기’ 트래킹에서 배우는 그 무엇이다.

기대? 마음껏 하십시오. 당신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뛰어넘을 것이며, 초월 그 이상이다. 군더더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가 보시면 안다. 걸으면서 알게 될 것이다. 그것도 멋진 대장님과 함께라면 금상첨화이고!

한필석 대장님,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신 왕언니, 고독한 강선생님, 중후한 멋이 풍기는 윤선생님 부부, 냉철하신 장여사님, 은근한 내공의 오틀리아님, 부산 싸나이 최선생님, 질주 본능의 나선생님, 마음고생이 심했던 변선생님 부부, 패셔니스트 우여사, 기오 부부, 이경 부부, 고교 졸업 연도가 같은 동기(학번은 내가 빠르다), 말벗과 길벗이 되어주신 IS님(그 IS 아닙니다), 힘들게 완주하신 매형, 참으로 고맙습니다. 모두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참, 묘하게 생긴 납작 복숭아 꼭 먹어보시라. 무지 달콤하고 맛있다.
평점 4.8점 / 5점 일정5 가이드5 이동수단5 숙박5 식사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