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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항대협곡Best] 동/남/북태항 풀종주 5일
작성일 2018.10.27
작성자 이*진
상품/지역
트레킹중국

빗속을 뚫고 안개를 제친 태항산맥 트레킹

2015년 중국 사천성 스구냥산을 다녀온 후 중국 산행에 대한 생각은 아예 접고 지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산병을 겨우 이겨낸 산행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년 안식년에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천산산맥 트레킹을 다녀와 해외산행에 대한 미련은 없다.
그런데 막상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니 병이 도졌는지 어디론가 떠나고픈 심정이 간절하다. 그간 기회가 날 때마다 국내산행을 쉼 없이 다녔지만 왠지 해외산행이 그리워진다. 요리조리 어디를 갈까 고민에 빠진다.
평소 애용하던 혜초 사이트에 들어가 상품을 검색하며 후보지를 물색한다. 그런 와중에 절친한 친구와 말을 나누는 우연한 기회에 해외산행 이야기를 꺼낸다. 그가 어렵게 시간을 낼 수 있다는 말에 힘이 불뚝 솟는다.
몇 해 전 백두산을 동행한 친구이기에 거리낌 없이 후보지를 제시해 본다. 짧은 기간에 다녀와야 해서 중국을 택하고 화산과 태항산 둘을 놓고 잰다. 화산은 서안에 있어 매우 덥다는 말에 태항산으로 결정한다.
태항산은 동서 250키로 걸쳐있는 험준한 산맥으로 중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될 기분이다. 또한 작년에 한번 갈려고 시도했던 곳이기에 마음이 쏠린다.
친구는 오랜만에 가는 해외산행에 대한 설렘이 가득한 눈치다. 하지만 산행경험이 많은 친구라서 걱정되지 않고 오히려 포근한 마음이 든다. 홀로 하는 산행도 좋지만 절친한 친구와 즐기는 산행은 더욱 값지고 행복한 법이다.
각자 여름산행에 대한 준비를 마치고 공항에서 조우한다. 7월 26일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내심 피서를 겸한 산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시나 인천공항은 여행객으로 북적거린다.
약속된 장소에 다가가니 여행사 직원이 일정표와 티켓을 건네준다. 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수속에 들어간다. 이때 전혀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진다. 일행 8명이 단체비자로 수속하는데 내가 일번으로 조장이란다.
책임이 막중하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떤 기준으로 내가 일번으로 되었는지 상상력을 발동한다. 예약 순인가 나이순인가 별의별 생각에 잠긴다. 조원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말로 상념을 마무리한다.
곧바로 짐을 부치고 출국수속을 마친 후 면세점으로 간다. 일용할 양식인 소주와 김치를 산다. 친구는 중국음식에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나는 꺼림칙해서 만약을 대비한 것이다. 나중에 요긴하게 쓰이길 바랄 뿐이다.
친구와 밥도 먹고 대기시간을 보내기 위해 라운지로 간다. 헌데 그간 사용하던 카드를 내미니 실적미달로 입장 불가란다. 순간 당황스럽고 창피하기도 한다. 그냥 돌아서서 간단히 때우기로 하고 푸드 코트로 발길을 옮긴다.
친구는 우동을 나는 비빔밥으로 배를 채운다. 지정된 게이트로 가서 탑승을 기다린다. ‘제남’행 대한항공 탑승구에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다. 아마도 좌석도 넉넉한 낌새다. 사드 영향인지 비수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탑승시간이 다가오자 일행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저마다 남다른 패션과 포즈가 압도한다. 해외산행 경험이 많은 베테랑임이 자명하다. 괜히 나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주눅이 든다.
시간에 맞춰 탑승하니 예상대로 좌석이 널찍하다. 일행은 띄엄띄엄 자리를 잡는다. 이륙한지 한 시간여 지났을까 벌써 착륙 안내가 흘러나온다. 참으로 가까운 곳이다. 인천공항에 나오는 시간보다 덜 걸리니 말이다.
제남공항에 도착에 단체비자 순서대로 번호를 불러 일행을 점검한다. 차근차근 입국수속을 밟고 짐을 찾는다. 제일 먼저 빠져나와 혜초 피켓을 들고 있는 가이드를 만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일행을 기다린다.
공항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린다. 심란해서 가이드에게 기상을 물어보니 앞으로 계속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다. 산행에 지장이 없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마음을 비우는 게 좋다. 덥지 않아 피서 온 셈으로 치부한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자나도 나오지 않는 일행이 있다. 알고 보니 철저한 짐 검사를 당한 것이다. 가방 속에 있는 오징어와 반찬을 빼앗겼단다. 장아찌를 가져온 나는 괜찮았는데 참으로 재수 없는 경우다.
일행이 모두 나오자 공항 밖으로 이동해 대형 리무진버스에 오른다. 각자 편안한 자리를 잡는다. 16명 일행에게는 널찍해서 오랜 이동시간을 배려한 듯하다. 일단 첫 느낌이 좋다. 버스는 서서히 공항을 빠져나간다.
가이드는 ‘차림홍’이라 소개하고 연길이 고향이란다. 중국에서 태어나 자라 한국말이 서툴다고 양해를 구한다. 그리고 일정에 대해 소개하면서 오늘은 ‘휘현’시까지 5시간 이동하는데 이는 중국에서 아주 빠른 것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미 각오는 했지만 날씨를 감안하니 막막하다.
버스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막는다. 짙은 안개로 위험하니 진입이 안 된단다. 참으로 해괴망측한 논리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국도로 방향을 잡는다.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어차피 오늘내로 가면 되니 마음을 편히 먹는다. 황하대교를 건넌 버스는 속도를 낸다. 비 내리는 창밖에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옥수수가 즐비하다. 그 규모에 놀라 감탄을 연발한다. 그게 주식이라니 이해는 간다.
깜빡 졸았는지 나도 모르게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중간에 고속도로를 탄듯하다. 가이드는 한 시간여 지체되었다 하면서 일정을 변경하여 저녁부터 해결하고 간다고 한다.
밖은 벌써 어둠이 깔리고 비는 조금 잦아든다. 식당으로 가는 틈을 이용해 가이드는 자기소개를 제안한다. 앞으로 4박5일 동안 동고동락할 일행들이 서로 모르니 가볍게 인사를 나누라는 취지다.
혜초를 통해서 오신 손님들은 진상이 없는 훌륭한 분들이라고 극찬을 하며 단체비자 순으로 인사를 시킨다. 제일 먼저 호명당한 나는 간단히 소개한다. 이어 저마다 여행의 변을 털어놓는다.
혼자 산행을 오신 분을 비롯해 부부와 자매, 처와 처형을 모시고 오신 분 등 다양한데 우리처럼 친구끼리는 유일하다. 게다가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대표 산객이고 다들 좋은 인상을 풍겨 멋진 산행이 기대된다.
그 사이 버스는 고속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식당으로 진입한다. 아마 관광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집이다. 몰래 소주를 챙겨 내려 원탁에 앉는다. 단체비자 기준으로 A, B조로 나눈다. 갈 때까지 변함없는 불문율이다.
메뉴는 김치찌개다. 친구가 ‘주류반입금지’라는 표지판을 가리키면서 가져온 소주를 어떻게 하냐며 걱정한다. 물 컵에 몰래 따라 마시면 된다고 우기면서 식사를 시작한다. 찌개 맛은 그저 그래 실망이다.
일행과 아직 친해지지 않아 술잔을 돌리기에는 머쓱하다. 조용히 홀로 따라 마시면서 비오는 저녁을 위로한다. 집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딱히 맛은 없더라도 나중을 생각에 먹어둔다.
중국 도착 첫 저녁으론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다시 버스에 올라 ‘휘현’을 향해 본격적으로 달린다. 창밖엔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장마철은 분명하다.
비가 그치고 안개가 자욱한 밤길을 얼마나 달렸는지 휴게소에 도착한다.
한적한 휴게소에서 볼 일을 보고 다시 출발한다. 거의 다 왔다 하지만 점점 지루해진다. 고대하던 ‘휘현시’에 도착하니 이미 10시 반을 지난다. ‘휘현’은 아주 작고 낙후된 도시로서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한다. 허나 오늘은 안개로 전혀 보이지 않으나 풍광이 아름답다 전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의보감과 같은 “본초강목 의 저자 이시진의 고향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주위 산에서 나는 약초로 유명하고 산양을 방목하여 키워낸 감칠 맛 나는 양고치가 관광객의 입을 유혹한다.
피곤함 몸을 달래려 재빨리 호텔에 투숙하고 가이드에게 맥주를 부탁한다. 샤워 후 맥주에 소주를 말아 친구와 건배한다. 땅콩이 있지만 출출하여 컵라면을 만들어 장아찌를 곁들인다. 아무래도 저녁이 부실했던 모양이다.
몰려오는 취기와 포만감으로 잠을 청한다. 휘현시 풍성중주호텔에서 중국의 첫 밤을 이렇게 맞는다. 와이파이로 집에 안부를 전하고 내일의 예보도 검색하면서 꿈나라로 떠난다.
아침에 눈을 떠서 제일 먼저 창밖으로 다가간다. 짙은 안개로 시야가 형편없다. 과연 산행이 가능할지 걱정스럽다. 7월 27일 우리 앞에 놓인 여정들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호텔 앞에 이시진 동상이 보인다. 한방 찍는다.
호텔뷔페에서 조식을 해결한다. 수준은 그저 그래 장아찌로 입맛을 돋운다. 기상에 관계없이 예정대로 ‘천계산’을 향한다. 버스로 한 시간쯤 달려 입구에 도착하니 이슬비가 내린다. 그래도 쏟아지지 않으니 다행이다.
‘천계산’은 “우공이산 이란 전설을 품고 있는 곳으로 망치와 징만으로 ‘괘벽공로’라는 길을 만든 믿기 힘든 미스터리를 간직하고 있다. 또 도교가 창시된 곳으로서 많은 인파가 기도를 청한다고 한다.
중국의 관광지는 등급을 매기는데 역사와 경치 그리고 관리 상태에 따라 정해진다. 5A급 관광지는 정부의 예산과 인력뿐만 아니라 홍보도 지원한다. ‘천계산’이 바로 5A급 관광지로 ‘팔리구’라는 통합관리센터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내일 모래 갈 태항산은 4A급이라고 한다.
입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올라간다. 여자안내원이 동승하여 중간지점에서 내리더니 삽을 든다. 길을 떨어진 돌이나 흙을 치우기 위함이다. 어느 정도 올랐는지 ‘천계산’을 알리는 입석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으로 찍어본다.
다시 전동차에 올라타 ‘천계산’ 둘레 길을 한 바퀴 돌기 시작한다. 사방은 안개로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워 차에서 내려 전망대에 내려간다. 깎아 지르는 절벽위에 만든 전망대에 서니 몸이 오싹해진다. 안개로 사방이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습한 기운과 안개를 헤치고 다음 전망대로 간다. 걷다가 타다가 둘레 길을 돌아본다. 가는 곳마다 호두를 파는 장사꾼이 연신 호객한다. 잠시 주변을 보니 호두나무가 지천이다. 따스한 기후가 제격인 모양이다.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시신애’라는 절벽으로 내려간다. 돌계단과 철계단을 거듭해 내려가니 평평한 천연 전망대에 이른다. 절벽위에 홀로 선 느낌이다. 여기도 짙은 안개로 시계제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겐 더없이 좋은 절호의 기회다. 짙은 안개덕분에 내려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전동차 맨 뒷좌석에서 주변을 살피는데 절벽을 가로지르는 잔도를 만드는 현장이 나타난다. 왜 그리 위험한 길을 만들까 궁금하지만 알도리가 없다. 아찔한 스릴을 원하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천계산’ 한 바퀴를 돌아 원점에 와도 사방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마음을 비우고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회룡풍경구’에 있는 ‘석애구 왕망령’으로 이동한다. 다들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잠깐 이동하니 커다란 돌에 새긴 ‘왕망령’ 비석이 일행을 맞는다. 예서부터 걸어서 트레킹 한다. 궂은 날씨에 한사람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가벼운 걸음을 내딛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재대로 반증한다.
어디를 가도 뵈지 않는 전망에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꿋꿋이 사진을 찍는 일행의 정성이 존경스럽다. 속으로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지 않으니 다행이라 여긴다. 어느 포토존에 이르러 안개를 배경삼아 셔터를 눌러보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가득한 건 어쩔 수 없다.
그 때 가이드가 돌연 일행을 모아 ‘왕망령’의 유래를 소개한다. ‘왕망령’은 ‘산서성’에 위치하고 바둑의 원산지로 유명해서 우리나라 명기사인 조훈현이 중국기사와 바둑 둔 장소를 기념하여 만들어 놓고 있다고 한다.
‘왕망령’은 “왕망 이란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란다. 왕망은 권력욕심에 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건립한 위인이다. 16년간 최단기 왕국을 다스리면서 독재를 누린다. 이를 참지 못한 “류수 가 반란군을 규합하여 전투를 벌인다.
그 와중에 “왕망 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게 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살아나 다시 군을 정비하고 후한을 건국한다. 그의 주검을 확인하지 못한 후“류수 는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이런 전설로 얻어진 이름이 ‘왕망령’이다.
태항산대협곡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왕망령’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회한을 남긴 채 버스타고 하산한다. ‘석애구’에 위치한 도가산장으로 이동하여 현지식 오찬을 시작한다.
오후 산행을 위해 재빨리 긴 바지로 갈아입고 소주를 챙겨 자리를 잡는다. 가이드가 기상으로 빼어난 경치를 하나도 보지 못한 보상으로 맥주를 낸다. 오후에는 자기가 특별한 기술(?)을 쓸 테니 기대하라며 웃음을 자아낸다.
소맥으로 한잔 마시며 중국식 반찬이 어제 한식보다 낫다며 맛나게 배불리 먹는다. 가져온 장아찌를 권해 보는데 의외로 인기가 좋다. 앞으로 끼니마다 계속 제공해야 할 듯하다. 불현듯 마님에게 고마움이 느껴진다.
점심을 마칠 쯤 후드득 소리가 나더니 비가 다시 내린다. 가이드가 기술을 썼다더니 효험이 없나보다. 우천 산행을 대비해 장비를 철저히 챙겨 출발을 감행한다. 언제 비가 그칠지 모르니 마냥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발걸음을 옮겨 마을을 벗어나니 물줄기 소리가 요란하다. 절벽을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수 소리다. 모두 탄성을 지르며 폭포 곁으로 가까이 내려간다. 힘은 들지만 장맛비 덕분에 화려한 폭포 장면이 연출되는 행운을 맛본다.
중국에 와서 처음 마주한 장엄한 풍경에 감탄하며 한방씩 기록을 남긴다. 물이 떨어지는 지점을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우리도 멋진 포즈를 취해 찍어본다. 가이드가 빨리 올라오라고 성화다.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본격적인 ‘구련산’ 트레킹이 시작된다. 다행이 비는 잦아들면서 걷는데 불편함이 없어진다. 조금 습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구련산’은 9개의 연화가 피어오르는 듯 하다해서 그 이름이 불리고 있다.
포장된 길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니 사방이 모두 옥수수 밭이다. 산위에도 절벽위에도 틈만 있으면 옥수수를 심어놓은 현지인의 지혜에 놀라울 뿐이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비가 그치고 웅장한 협곡이 눈앞에 나타난다. 가이드의 기술(?)이 이제야 약발을 받는 듯하다.
아름다운 산수경관과 기괴한 지질을 간직한 태항산대협곡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진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본다. 그것도 모자라 눈의 망막으로 옮기고 가슴에 새기기를 반복한다. “어쩌란 말이야 , “우짜쓰까 를 연발하며 지금까지 억눌렀던 감동의 응어리를 토해낸다.
깎아 지르는 절벽사이로 빚어진 거대한 협곡이 그야말로 그랜드캐년이다. 이래서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나보다. 오전에 안개 속으로 올랐던 ‘천계산’ 정상과 산세가 멀찌감치 보인다. 마치 솥뚜껑 모양이다.
친구와 나는 마지막 후미에서 천천히 협곡을 감상하면서 걸어간다. 빼어난 경치가 나오면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아낌없이 추억을 쌓아간다. 이러한 여유가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한적한 우리만의 트레킹이다.
너무 여유를 부렸나 앞서 가던 일행이 가이드를 놓친다. 길이 없다며 소리쳐서 다시 거꾸로 돌아가 길을 찾아낸다. 곧바로 선두와 합류한다. 후미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이때부터 영원한 꼴찌 후미를 맡게 된다.
가면 갈수록 더욱 수려한 경관이 펼쳐진다며 가이드는 서두른다.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천계산’을 끼고 끊임없는 협곡 길을 내딛는다. 위험구간이 두 군데 있다면서 주의를 당부한다.
걸으면서 마주치는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나도 모르게 온몸이 오싹해진다. 스릴도 만점이지만 안전산행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그런 와중에 협곡사이로 펼치지는 장엄한 운해가 우리들의 발길을 막는다.
어김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감탄을 연발하며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비가 갠 대협곡의 운해경관을 감상하며 저마다 최고의 날씨를 선물 받았다며 행복한 찰나를 만끽한다. 가이드의 기술(?)이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기괴한 모양의 산세를 새하얀 구름이 휘감은 한 폭의 산수화를 바로 곁에 두고 걷는 기분이야 말로 신선이 따로 없다. 구름 위를 마음껏 노니는 신선 트레킹을 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른다.
드디어 위험구간에 도달한다. 좁고 험한 벼랑길이고 낙석의 위험까지 도사린다. 조심 또 조심 경계를 늦추지 않고 통과한다. 허술하게 마든 작은 나무 문을 닫고 오라는 가이드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다. 꼴찌의 몫이다.
‘천계산’ 위세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어느새 우리 뒤로 처진다. 그 만큼 많이 걸었다는 반증이다. 다시 위험구간이 만나는데 배낭과 스틱이 걸리지 않도록 앉아서 통과해야 한다. 좁고 낮은 벼랑길이다.
대협곡의 감동을 서서히 뒤로하고 일행은 ‘구련산’ 입구로 방향을 잡는다. 좁은 길을 벗어나 널찍한 임도가 나타난다. 가는 길에 경운기를 타고 있는 청년을 만난다. 오늘 처음 조우한 현지인이다. 아마 현지인은 이러한 산행은 잘 하지 않고 농사일로만 오가는 정도라 생각된다.
한참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점점 지루할 즈음 친구는 계속 길가에 핀 꽃과 나무에 관심을 기울인다. 잎을 떼어 냄새를 맡고 맛도 본다. 그래야 제대로 기억할 수 있다는 어느 선생의 가르침이란다.
언젠가 끝이 나오겠지 하면서 털레털레 걷는다. 오로지 나무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이외엔 아무런 방해물이 없다. 호젓한 산행길이다. 그런데 갑자기 앞서 가던 자매가 멈춘다. 발이 아파 양말을 갈아 신는다고 한다.
꼴찌로서 기꺼이 기다려준다. 친구와 약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약초연구가 끝났냐며 갈 길을 재촉한다. 다시 걸어가는데 선두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늦은 모양이다. 조금 속도를 내본다.
굽이굽이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일행과 휴식처에서 합류한다. 근데 여기가 끝이 아니고 한 시간 더 내려가야 한단다. 걷기 힘든 사람은 전동차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옵션을 추천한다. 비용은 10불이다.
가이드가 인원을 파악하고 어디론가 연락을 하더니 최소 인원이 부족한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게다가 앞서 내려간 일행이 있음을 알고 표정이 일그러진다. 단숨에 결정을 바꿔 모두 걷기로 하고 힘든 발걸음을 재차 시작한다.
발이 아픈 일행도 별 수 없이 따라 나선다. 가이드의 현명하지 못한 안내에 불만은 있지만 참는다. 어떠한 순간에도 가이드는 분노를 내비치는 실수는 없어야 한다는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고 싶다.
저간의 해프닝을 뒤로하고 포장길을 한참 걸어 내려오니 가파른 돌계단이 기다린다. 멀리 펼쳐진 운해를 재차 감상하고 계단을 밟는다. 무릎을 배려해 지그재그로 천천히 내려온다. 중국산의 대명사인 돌계단은 피할 수 없다.
계단은 피곤하지만 하산속도는 무척 빠르다. 얼마 되지 않아 일행이 전부 내려와 흐르는 물에 간단히 씻어 피곤을 달래본다. 뒤돌아보니 아까 말하던 수직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저걸 타고 내려오면 편할 걸 아쉽다.

전동차를 타고 내려와 버스로 갈아타고 호텔로 향한다. 투숙하기 전에 시내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한다. 하던 대로 A, B조 나누어 자리를 잡는다. 재빨리 소주와 장아찌를 꺼내면서 맥주를 손수 주문한다. 션찮은 중국말로 하는데 나름 통하는 게 신기하다. 새록새록 돋아나는 기억도 신통하다.
A조 단합을 위해 소맥으로 건배한다. 이때 매번 끼니마다 술값이 드는데 갹출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필요한 경비는 그때그때 걷고 남을 때까지 걷는 것이 기본 원칙임을 제시한다. 선임되는 총장급 총무를 배려한 것이다.
기꺼이 일행의 동의를 구하고 이를 집행할 총장선임을 제안한다. 조장 직권으로 키 크고 젊고 잘 생긴 남성을 임명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름이 여자이름이라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멋쟁이 총장임에 틀림없다.
현명한 결정에 박수로 화답하며 즐거운 만찬을 마친다. 예서 끝낼 수 없고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호텔로 돌아가서 각자 정비를 한 다음 10시에 다시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 유명하다는 양꼬치를 맛볼 요량이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 급한 볼일을 보기위해 식당의 화장실로 달려간다. 문을 여는 순간 당황한 나머지 멈칫한다. 큰 거와 작은 거를 한방에서 해결하는 칸막이 없는 화장실이다. 여기까진 그래도 넘어갈 수 있다.
용기를 내어 들어가니 한 분은 작은 거를 다른 분은 쪼그려 앉아 큰 거를 아무 거리낌 없이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역겨운 냄새를 견디면서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현지인의 표정에 정말 어이가 없다. 중국에 많이 와봤지만 이런 황당한 장면을 목격한 것은 처음이다.
나만의 화장실 해프닝을 겪고 호텔로 돌아와 간단한 샤워와 빨래를 마친 다음 서둘러 로비로 간다. 원하는 사람 5명만 의기투합하여 가이드가 소개한 호텔 인근 주점으로 향한다.
길거리에 즐비한 간이탁자에 자리를 잡는데 벌서 웃통을 벗어젖히고 술을 즐기는 현지인이 가득하다. 왜 그럴까 궁금하고 나도 한번 시도하고 싶지만 배 모양이 예쁘지 않아 참는다.
가이드의 조언대로 빠이주와 양꼬치를 주문한다. 양꼬치는 양념된 것과 안 된 것을 섞어 시킨다. 나오자마자 건배를 하며 술잔이 오간다. 서울서 먹은 양꼬지와 맛은 분명 다른데 뭐가 나은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빠이주가 바닥나자 맥주로 대신한다. 총장은 이참에 안주를 푸짐하게 주문한다. 뭔지 모르지만 안주로 먹을 만하다. 분위가가 무르익고 건아하게 취할 즈음 마사지를 다녀오는 여성 일행들이 합석한다.
맥주를 더 주문하고 술잔을 다시 채워 건배한다. 흥겨운 기분에 밤은 깊어간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내일을 기약하며 자리를 뜬다. 총장에게 돈을 더 걷으라고 눈치를 준다. 남을 때까지 걷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슬비와 안개로 시작한 아침이 가이드의 기술(?)로 장엄한 협곡의 속살을 내보이고 감동과 탄식을 연발하며 구름바다를 노닌 긴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간 심란했던 모든 시름을 잊으며 고요한 둘째 밤을 맞이한다.
달콤한 잠에서 눈을 뜨니 어제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28일 오늘은 ‘고무당산’을 가기위해 장시간 이동하는 날이다. 오는 날 경험했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가이드의 궤변에 익숙해진다.
조식 후 버스에 올라 ‘하북성’으로 출발한다. 고속도로를 타자 비가 내린다. 오늘도 쾌청한 날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어제의 취기가 안 풀려 졸며 자며 비몽사몽이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에 그만한 것은 없다.
버스는 어느새 ‘상익계’ 휴게소로 진입한다. 생각지 않던 와이파이가 터져 아내에게 안부와 생생한 사진을 전한다. 지인들의 카톡 방에도 멋진 사진을 간추려 보낸다. 현지 특파원처럼 보고하는 기분이다.
버스는 다시 달린다. 지루한 막간을 이용해서 한 여성이 마이크를 잡는다. 공항에서 범상치 않은 모자로 주위를 끈 멋진 분이다. 요점은 전국여고골프대회에서 우승을 한 경력을 내세우면서 오는 10월에 감독으로 대회에 출전하니 SBS 골프방송을 보면서 많은 응원을 부탁하는 메시지다.
이번 팀은 내공이 깊은 분들이구나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버스는 ‘무안’에 이른다. 무려 5시간이상 달려온 셈이다. ‘무안’은 4대 철광지 중 하나로 광물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에는 대형화물차가 지천이고 난폭운전에 경적까지 무질서가 난무한다. 갑자기 혼란스럽다.
‘고무당산’을 가려고 국도로 접어드는데 도로가 폐쇄된다. 아마 비 때문이 듯 하다. 가이드가 차에서 내려 물어물어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 관광지로 가는 도로정비에 대해 물으니 가이드는 ‘하북성’은 철강부자로 관광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답한다. 우리로선 이해하지 못할 대목이다.
80년대에 지진으로 인하여 우연히 석탄이 발견되고 그로 인해 졸부가 생긴‘무안’에 철광부호가 많다는 말에 수긍은 하지만 그럴수록 도로와 같은 관광 인프라에 신경을 쓰지 하지 않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언젠가 개선되길 바라면서 12시경 ‘고무당산’입구에 도착한다. ‘고무당산’은 무당파의 수련장소로서 ‘장삼풍’ 태극권을 연마한 산으로 유명하다. 그 만큼 산세가 신기에 가까워 북쪽 소림에 비할 만큼 경이롭다는 뜻이다. ‘고무당산’이란 이름은 ‘호북성’의 ‘무당산’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해서 옛 ‘고(古)’자를 부친 것이란다.
여전히 비는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리는데 그칠 낌새가 없다. 착잡한 기분에 먼저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산장식당으로 향한다. 우산을 쓰고 걸어 올라가는 길에 포장이 한참이다. 신발에 타르가 묻어 불편하고 짜증난다.
산장식당에 이르러 비는 점점 세어지는 느낌이다. 일단 점심을 먹고 보자는 생각에 몰두한다. 메뉴는 백숙인데 먹을 만하다. 느끼한 맛을 없앨 빠이주를 시킨다. 반만 먹고 나머지는 정상주를 위해 남긴다.
점심을 먹고 산행을 감행할지 고민에 빠진다. 가이드도 난처한 입장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어 일단 케이블카로 올라가 보자는 말이다. 우리만을 위해 케이블카를 운행한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무거운 배낭은 식당에 보관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가기로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시계는 제로다. 오를수록 전망은 더 나쁠 거라 예상하면서 행여 바람이 불어주지 않을까 일말의 행운을 고대한다.
20분여 올라가 내리니 가는 비는 내리고 짙은 안개가 자욱하다. 가이드의 안내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다행히 돌길이라 걷는데 문제없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전망이 살짝 열리기도 하지만 금방 닫혀버린다.
어느 정도 비는 잦아들지만 안개는 여전하다. 한참을 돌고 돌아 오르는데 사당이 보인다. 도교 사당인데 음산한 기운이 돈다. 사당을 지키는 도교인이 향을 권하는데 맘이 내키지 않는다. 나름 현지인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사당을 뒤로 하고 마천선교를 건너 정상으로 향한다. 전율을 느끼는 다리로 유명하지만 사방이 보이지 않으니 맹탕이다. 가볍게 건너 올라가니 범종이 반긴다. 잠시 숨을 돌리는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바로 직전 건너온 다리와 주변 전망이 열린다. 재빨리 한 컷을 찍느라 아우성이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올라왔다며 하늘에 감사한다. 한마디 불평 않고 올라온 일행의 참을성에 자연의 보답인 듯하다.
순간의 감동을 맛보고 몇 발작 옮기니 정상석이 버젓이 나타난다. 다른 건 몰라도 예서 인증 샷은 남겨야 한다. 멋진 포즈를 취해 본다. 그래도 비가 그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번엔 덕이 많은 분들만 온 듯하다.
이제 하산하는 길만 남는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하며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온다. ‘채홍교’를 지날 즈음 아쉬움에 모두 한 컷을 작렬한다. 무지개 다리라하는데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부지런히 내려와 케이블카를 타고 식당에 도착한다. 비는 그쳤지만 안개는 여전하다. 내 제안으로 따스한 차 한 잔으로 몸을 풀고 배낭을 메어 버스로 향한다. 가는 길에 ‘장삼풍’ 기념관에 들려 잠시 태극권을 그려본다.
‘고무당산’ 트레킹을 우려곡절 끝에 무사히 마치고 ‘무안’으로 향한다. 그때 날이 들면서 우리가 건너온 마천선교와 채홍교가 멀리 보이고 ‘고무당산’의 위용을 자랑한다. 다시 올라가고픈 마음이 절실하다.
하지만 잠시나마 정상을 내어준 산행에 만족하고 내일의 산행을 기약한다. 시내로 가는 길에 허물어 버린 집이 널브러져있어 무질서의 극치다. 아마도 정리정돈의 개념을 상실한 듯하다. 뭔가 조치가 안 되는 것이 신기하다.
관광에 신경을 쓰지 않는 도시라니 그것으로 이해하면 될 일이다. 호텔로 가기 전 저녁을 먼저 한단다. 이번엔 16인 모두 한상에 앉는 대형 식당이다. 근데 막상 앉다보니 좌석 두 개가 부족에 억지로 만든다.
나오는 요리를 돌려가며 조금씩 맛본다. 여태까지 보지 못한 탕수육과 생선조림이 나온다. 우리 입맛에 맞는지 추가한다. 가이드가 미안하다며 빠이주 한 병을 낸다. 맥주도 시켜 가져간 소주로 소맥을 만들어 마신다.
이번에도 장아찌를 접시에 담아 놓는데 옆에 앉은 여성분이 너무 맛있다며 흡입한다. 그간 다른 조에 속해서 그 맛을 보지 못한 터라 조금 미안해진다. 다이어트를 위해 안 먹으려 했는데 장아찌 때문에 실패했다며 투정이다.
처음으로 일행이 모두 같이 앉아 푸짐한 식사를 하니 포근한 마음이 든다. 끝으로 과일을 추가로 주문하면서 남은 술을 알뜰하게 마신다. 역시 주당은 어디를 가나 남기는 법이 없다.
기분 좋은 만찬을 마치고 ‘무안’에서 제일 좋다는 오성급 ‘재부호텔’에 투숙한다. 시설은 어제보다 한 단계 높아 보이고 안락한 분위기다. 그냥 잠들기 아쉬운지 총장이 한잔 더 하자고 제안한다. 거절할 수 없다.
샤워를 하고 친구와 같이 총장을 모시고 인근 술집을 찾아 나선다. 길 건너 백화점에 들러보니 슈퍼가 있다. 유사시에 여기서 맥주를 사서 마시면 된다. 최후의 보루를 찜하고 백화점을 나오는데 국수집이 눈에 들어온다.
단번에 들어가 맥주를 파느냐고 물어본다. 이때 친구가 중국말로 거든다. 맥주와 간단한 닭고기 안주를 주문한다. 중국식 ‘치맥’으로 일단 성공이다. 한참 마시고 있는데 앞좌석에 있던 남성이 다가와 뭐라고 하는데 알아듣지 못한다. 친구도 모르겠다고 한다.
추측컨대 내 머리가 하얗게 세서 이상하게 본 듯하다. 앞좌석에 앉아있는 그 남성의 일행들이 나를 자꾸 바라보면서 히죽히죽 웃는 것을 보니 짐작이 간다. 마치 외국에서 온 원숭이가 된 느낌이다. 그 남성도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한지 가볍게 건배하고 돌아간다.
오랜 이동을 견디고 짙은 안개를 제치며 감행한 고무당산 트레킹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간다.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인 내일 태항산 트레킹에 날씨가 화창하기를 기원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비는 오지 않는데 안개가 자욱하다. 29일 일정을 조식 뷔페로 시작한다. 메뉴가 다양해서 좋고 산행을 대비해 충분히 먹어둔다. 점심은 행동식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큰 기대를 앉고 우리는 태항산 입구로 향한다. 그런데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3일내내 오전엔 비가 내리고 오후엔 살짝 개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제 그러려니 체념하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버스가 태항산 입구로 들어서는데 길이 비에 유실되어 멈춘다. 잠시 상황을 점검하면서 지체한다. 어찌할지 우왕좌왕 오도 가도 못한다. 내심 차를 돌려 제남으로 돌아갔으면 바란다. 몇몇 분들도 그런 생각 드는 모양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도로가 복구됐는지 버스가 전진한다. 현지인의 안내대로 흐르는 물을 가로질러 건넌다. 이제는 도리 없이 우천 산행을 감행하는 수밖에 없다. 단단히 맘을 먹고 장비를 챙긴다.
각자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쓰고 산행을 시작한다. 순탄치 않은 산행으로 예상된다. ‘앙골’이란 마을을 지나 오르막이 시작된다. 넓적한 바위로 지붕을 만든 마을 전경이 이채롭다. 추억의 사진으로 담아본다.
마을을 지나자 호두나무와 옥수수 밭이 보이고 계곡으로 이어진다. 마주친 현지인은 매우 우려스러운 모양이다. 미친 짓이라 생각할지로 모른다. 벌써 몸은 비와 땀으로 젖어들고 습한 기운이 엄습한다. 힘들지만 비속에 안개로 어우러진 산수화 같은 험준한 산세 모습을 뒤돌아보며 위안한다.
이번에도 후미를 맡아 책임을 다한다. 중간에 힘들면 휴식을 취하고 간식을 하면서 체력을 보충한다. 우산을 쓰고 정글 같은 숲을 헤치며 오르는 계곡이 오지라 해도 손색이 없다. 언제 계곡이 끝날지 암담하다.
가이드 안내대로 오르고 또 오르니 끝이 보인다. 순간 비가 멈추고 중턱에 안개가 피어오른다. 뒤돌아보니 태항산맥의 장엄한 라인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또한 장관이다. 비와 안개가 가져다 준 최고의 선물이다.
계곡이 끝나고 능선에 이르니 확 트인 초원이 반긴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활짝 피어있고 그 끝에 나비와 같은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방긋 웃는 듯 일행을 열렬히 환영한다. 탄성을 지르며 사방 파노라마를 만끽한다.
비를 핑계로 오르지 않았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되뇌면서 자기만의 멋진 포즈로 인증 사진을 남긴다. 일명 ‘나비봉’을 바라보며 환상적인 경치를 어찌 담을까 만감이 교차하면서 달콤한 여유를 갖는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나비봉’ 사이고개를 넘어 태항산맥의 진수를 맛보러 갈 참이다. 날이 개이니 기대가 만발이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데 주위에 피어난 야생화에 눈길이 간다. 엉겅퀴 같은 꽃이 지천인데 살에 다면 매우 따갑다. 아름다운 꽃은 따가운 가시가 있기 마련이다.
어디선가 산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보이지는 않는다. 친구는 야생화를 바라보며 이름을 기억하려고 입을 뜯어 냄새 맡고 맛보고 체험에 열중이다. 역시 전문가가 되려면 그 만한 노력과 정열이 필요함을 반증한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봉우이사이 고개를 향해 전진한다. 주위에 빼어난 경관을 보며 걸어서 그런지 신난다. 룰루랄라 콧바람이 저절로 나온다. 언제 비가 왔느냐 비웃을 정도로 전망이 투명하다.
고개 넘어 능선에 들어서는데 길가에 초롱초롱 야생화가 만발해 있다. 그 꽃들에게 친구는 온갖 관심을 쏟으며 애써 이름을 기억해낸다. 근데 갑자기 내가 아는 꽃 봉우리가 눈에 확 들어온다. 곰취다. 야들야들한 잎만을 골라 따서 배낭에 담는다. 일행들에게 주기 위함이다.
‘왕망령’에서 봤지만 여기는 지천에 깔려있다. 현지인은 아마 곰취를 즐겨 먹지 않는 모양이다. 이미 꽃이 피어 억세지만 씹어보니 향기는 진하고 그윽하다. 빨리 가서 나눠 주고픈 마음이다.
큰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꿋꿋이 걸음을 옮긴다. 슬슬 시장기가 느껴져 행동식으로 준 소시지를 베어 문다. 배고프니 맛있을 밖에. 점심 먹을 특급 전망대가 코앞이다. 마지막 힘을 내어 전망대에 오른다.
가이드의 말대로 태항산맥의 전모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준다. 오히려 추위가 느껴져 바람막이를 걸친다. 환상적인 산맥의 파노라마를 실컷 사진으로 담는다. 이걸 보러 비를 뚫고 온 보람이 있다.
각자 맘에 드는 죽과 빵, 컵라면 등을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나는 죽으로 요기를 한다. 길가에서 따온 곰취를 나눠주고 남은 것은 앞서 따온 여성분께 맡긴다. 저녁에 삼겹살 먹을 때 싸먹을 요량이란다. 일행이 먹기에 충분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하산을 서두른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는 가이드 말에 협조한다. 가면서 일본군의 학살현장과 등소평이 만든 팔로군 초소도 눈여겨보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는다.
능선 길을 가다가 솔밭을 만난다. 여기서 길을 잃기 쉬우니 주의하란다. 우거진 숲을 지나니 암릉지대가 나타난다. 위험하니 서두르지 않는다. 고개에 오르니 곧바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고도는 약 1,900미터로 높지 않지만 사방을 둘러보기에 충분한 높이다. 탁 트인 능선과 초원이 몰려온다.
경사가 급한 암릉지대를 내려가는데 극히 조심하여 한사람씩 밧줄을 잡고 신중을 기한다. 미리 내려가 아찔한 순간을 기록에 남기려 셔터를 눌러대는 분이 부럽다. 일행이 모두 통과하자 푸른 초원과 능선 길로 들어선다.
웅대한 태항산맥을 바라보며 초원의 둘레길이 시작된다. 가는 길에 밭에서 한적하게 풀을 뜯는 소떼를 만난다. 너무 색깔이 예뻐 같이 사진을 찍는다.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지 않아 친근감이 든다.
선두와 차이가 점점 벌어진다. 앞에 한 팀이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더디기 때문이다. 그래도 추월하지 않고 후미를 묵묵히 지킨다. 대부분 걷기 좋은 길이지만 때론 빗물로 질척한 흙탕길이 가로 막는다.
나름 피하려 애써보지만 이미 바지와 등산화는 흙투성이다. 물만 들어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염없는 둘레길을 걷고 또 걷는다. 가이드의 재촉이 심해진다. 점점 느려지는 앞 팀이 걱정되지만 안전산행이 먼저다.
또 다시 곰취 밭이 만나고 색다른 야생화를 지나친다. 친구는 불현듯 생각났는지 아까 지나친 꽃 이름을 외친다. ‘진범’이라는 것이다. 대단한 기억에 감탄하고 꽃에 대한 집념과 의지가 부럽다.
곰취가 얼마나 많은지 심지어 지르밟고 갈 수밖에 없다. 아무런 상념 없이 선두를 쫓아가니 멀리 파란 철계단이 아스라이 보인다. 우리가 갈 곳이다. 목표가 보이니 안도가 되면서 서로 용기를 북돋는다.
우거진 풀숲을 뚫고 질척한 길을 넘어 드디어 계단입구에 도착한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중간 너덜바위에서 단체촬영을 잊지 않는다. 능선을 훤하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중국산의 대명사인 돌계단으로 접어드니 고도가 순식간에 팍팍 떨어진다. 무릎을 생각해 천천히 내려온다. 중간에 ‘화산동’이라는 동굴에 들러 보지만 별거는 없다. 안보면 서운할 것 같아 욕심을 부린다.
내려오는 길에 물길을 만나 신발을 정비고 부지런히 하산하니 오후 6시가 된다. 무려 8시간에 걸친 산행이다. 비를 뚫고 안개를 물리치며 감행한 산행가치가 충분하다. 미리 내려온 총장이 시원한 캔 맥주로 화답한다.
간단히 세면하고 버스에 올라 옷을 갈아입는다. 날아갈듯 상쾌하다. 그런데 한분이 팔을 다쳤다는 비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마음이 좀 그렇다.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모두 안전하게 산행을 마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이제 삼겹살을 먹으러 ‘유성’으로 이동한다. 한 가지 문제는 버스 타이어에 돌이 끼어 수리가 필요하단다. 그 틈을 타 주당들은 버스 맨 뒷자리로 모여 맥주와 소주로 급조한 하산 파티를 연다. 남은 안주를 모두 털어 마신다.
버스는 어느 마을 정비소에 멈추더니 타이어에 돌을 빼는 작업을 시킨다. 얼마지 않아 간단히 마치고 속도를 내 달린다. 한결 부드럽다. 첫날 들렸던 한식당을 향하는데 삼겹살로 늦은 저녁을 할 예정이다.
이미 밖은 어둠이 깔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미 마신 맥주 탓에 신호가 온다. 미안하지만 고속도로 주변에 잠시 차를 세우고 볼일을 본다. 시원하다. 이제 빨리 가기만을 고대한다.
가다 휴게소에 들린다. 다행히 와이파이가 터져 가족에게 하루 종일 못했던 안부와 사진 몇 장을 전송한다. 얼마나 가야할 지 지루함을 느낄 즈음 도착멘트가 나온다. 재빨리 남은 소주와 장아찌를 챙긴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마련한 한식당에 감사하며 자리를 잡는다. 총장이 손수 고기를 굽는다. 산에서 따온 곰취에 싸서 먹는데 향기가 아주 좋다. 소주로 건배하면서 서로 고생했다며 칭찬이 자자하다.
고기가 부족하면 시키고 소주가 떨어지면 가져오고 풍족한 삼겹살 파티가 밤이 가는 줄 모른다. A조 단합의 힘이다. 옆에 B조는 벌써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갈 요량이다. 양해를 구하고 마무리 건배한다.
시간이 허락되면 밤을 지새울 수 있지만 피곤한 일행을 위해 참고 자리를 뜬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에 호텔에 투숙하여 샤워와 빨래를 빨리 마치고 마지막 밤을 친구와 맥주 입가심으로 끝낸다. 곯아떨어진다.
눈을 뜨니 집에 가는 날이다. 서울은 얼마나 더울까 걱정이 앞선다. 30일 오늘은 제남시내를 관광하는 일정이다. 제남은 ‘산동성’의 성도로 72개 샘이 있어 천성이라 불린다. 면적은 서울을 12배에 달하는데 인구는 천만이다.
제남에는 지하철이 없는데 지하에 흐르는 샘 때문이란다. 재밌는 사실이다. 제남으로 향하는 길에 어김없이 비가 억수로 내린다. 비로 시작해 비로 끝날 모양이다. 그래도 할 것을 다 하지 했으니 걱정은 없다.
총장의 제안으로 부러진 가이드의 스틱을 보상하여 몇 푼씩 걷어 주자고 한다. 굳이 나보고 하라고 해서 간단한 멘트와 함께 꼭 스틱을 사야한다고 강조하고 전달한다. 일행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시내관광으로 먼저 검은 호랑이라는 ‘흑호천’에 들러 물맛을 보고 해방을 기념하는 ‘해방각’에 올라보고 먹거리로 가득한 부용거리를 거쳐 ‘대명호’에 이른다. 산객에게는 큰 관심이 없어 그냥 시간을 죽이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대명호’에 얽힌 4대 불가사의가 있다고 한다. 지하수 광물질로 인해 개구리가 울지 않고 뱀이 없으며 결코 범람하지 않고 가뭄을 타지 않는단다. ‘산동성’이 자랑할 만한 호수다.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 공항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이별주를 나눈 후 공항으로 향한다. 단체비자의 조장으로 마지막 임무를 능히 마치고 비행기 오른다. 이로써 대장정의 태항산 종주산행을 마친다.
순수한 자연을 쫒아 산행을 할 만큼 했지만 아직도 장엄한 산 앞엔 저절로 숙연해진다. 또한 동행한 고수들에게 한 수를 배운 점 경의를 표한다. 나름 개성이 많지만 절제하고 팀을 배려하는 태도가 존경스럽다. 우리가 가이드를 잘 만난 것이 아니라 가이드가 우리를 잘 만난 것으로 평하고 싶다.

평점 3.2점 / 5점 일정4 가이드3 이동수단4 숙박3 식사2
정보
작성자 문*현
작성일 2018.10.29

안녕하세요? 태항산 트레킹 상품 담당하고 있는 문길현 대리입니다.

여행 다녀오시고 다시금 추억을 되살려 상품평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겨주신 글과 사진을 보니 다시 한 번 태항산에 다녀온 것 같습니다.

혜초와 함께한 태항산 여행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해주시고 다음 여행도 다시 혜초트레킹을 찾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의 뜻을 담아 혜초포인트 15,000점 적립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