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 ,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레킹을 다녀왔다.
새로 이사 온 델러웨어 는 주로 평지라서 산을 가려면 굳이 펜실베니아주의 포코노 마운틴이나 버지니아 주의 세난도우 마운틴이 있는 다른주들로 서너시간을 운전해야해서 , 산을 자주 갈 수는 없었으나 히말라야정도 (?) 되는 거대산을 가려면 다소 트레킹 훈련이 있어야 함을 염두에 두면서도 , 그저 평소 다니는 체육관에서 하는 유산소 운동으로 잘 버텨내길 바랬지만 , 기대와 달리 역시 평소 마라톤을 한다거나 근육운동 만으로 그 거대한 산의 8일간의 트레킹 부담을 버텨내기엔 어려움을 느꼈다 .
히말라야 산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밀집된 거대 산맥으로 그 길이 약 2400km 와 폭이 200-400 km 의 산들이 남아시아 즉 네팔, 인도, 부탄, 중국 티베트와 파키스탄등 여러 나라를 걸쳐 위치 하며 , 이는 경부고속도로가 약 416 km 라면 대한민국 남한의 6 배의 길이라면 그럭저럭 이해가 빠를듯. 가장높은 에베레스트 산 8849 m 를 비롯 14 개의 높은산이 있는데 그중 8000 m 이상의 산은 현재까지 정복된 것 중 에베레스트, 칸첸중가, 로체, 그리고 안나푸르나 이다 .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4130 m 를 인천에서 출발 하여 카투만두에서 하루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 다음날 포카라까지 다시 네팔 국내선으로 이동 후, 같은날 오후 부터 트래킹을 시작하여 5 일간 산을 오르고, 6 일째 아침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에서 태극기 와 성조기를 흔들어 사진 을 찍고, 다시 3 일간 포카라로 돌아오는 총 8 일간의 트래킹 계획과 2 일간의 포카라와 카투만두 관광을 하는 총 10 박 11 일의 빡빡한여정이었기에 하루 11-13 km 씩 , 약 7-8 시간 을 산을 오르내리는 , 고도 4100 m 를 넘는 돌 산을 트래킹 계획을 잡은건, 우리 부부 에겐 애초 부터 무리 였겠지만 , 걍 어떨결에 예약하고 마음만 앞서서 나선 길이었다.
23 명의 트래커를 위해 각 한국인과 네팔인 헤드 인솔자 2 명과 14 명의 포터 와 세르퍼 들이 함께 하여 끊임 없는 길잡이 도움 과 항상 따뜻한 티와 마늘 숲 과 고칼로리를 배려한 한국식단을 비롯 최상의 서비스를 받았지만 , 산을 자주 가보지도 못한 부부가 설악산과 지리산 을 며칠 오른것으로 , 거대 돌산을 쉼없이 하루 평균 7-8 시간을 걷고 , 불편한 롯지 생활과 고산 병 그리고 히말라야 특위의 변덕스런 날씨를 버텨내고 특히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머물었던 해발 4130 m 에서의 추위를 견뎌내는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특별히 산악회에 소속으로 전문적으로 트래킹을 해 왔다거나 , 산 만을 사랑해온 것도 아니면서, 우리 부부는 평소 이정도 체력이면 말로만듣던 히말라야 를 다 오르는것도 아닌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는 이웃 산 다녀오듯 걸으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번 가을여행의 주 테마로 잡았다.
우선 한국으로 날라가 설악산과 지리산 종주를 하는게 네팔로 가기전 충분한 예행 트랙킹 이 되리라는 계산을 했다.
지리산 대피소들을 예약하고 그에 맞는 산행 준비를 했고 , 그 준비에 아이젠 하나만 더 해서 네팔로 향했다.
사실 지리산 종주도 결코 쉽지는 않았다.
화엄사 부터 “코재 ( 코가 닿게
높은 고산길을 일컫음)
라 불리우는 돌산 길로 노고단을 올랐기에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 했을땐 벌써 우리부부는 지쳐버렸고, 지리산 을 멀리 보며 감상하긴 커녕 이틀 내리 퍼붓는 비로 앞사람의 발뒷금치만 쫓아 빗길에 미끄러운 바위들을 오르고 또 올랐다 .
피아골을 지나 두번째 대피소인 연하천 대피소 에서 드뎌 남편은 감기를 호소하고, 설상가상으로 , 대피소 직원의
호우주위보 발령 소식을 주어 하산을 결정했지만 빗속에서 무거운 배낭을 지고 번들거리는 돌산을 다시 내려오는것 역시 쉽지않았지만 … 우리는 이것으로 안나푸르나를 향한 최소한의 예행트래킹훈련을 했다고 생각했다. 지리산 종주는 날씨의 악조건으로 힘들었으나 , 설악산 종주는 날씨도 좋았고 3 일간의 대피소 경험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에 수월 한 편이었다 .
인천공항에서 점심식사 후, 여유롭게 출발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하늘은 뿌연 잿빛이었다.
분지 지형의 도시로 세계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 포터들의 아우성과 마치 1960 년 대 의 한국의 어느 낡은도시를 연상하게 하는 무질서한 상가들 , 좁은도로와 하늘을 메우는듯한 전깃줄, 사람과 오토바이 , 차가 뒤엉킨 거리에서 교통사고 없이 나름의 무질서한 규칙들이 눈길을 끌었다 . 시내를 가로질러 관광버스로
도착한 카투만두의 고급 호텔은 피안의 성지 같이 아름다운 정원과 이름모를 열대꽃들로 장식되어있으며, 민속 음악과 조용한 분위기는 바로 몇분전 지나온 아수라장이던 그 거리와 너무도 대조적이라 차라리 희극적이랄까!
마침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레킹을 시작한 11/1-11/5 일 이 5 일간의 “ 띠하르 라는 민속 축제 기간이라한다.
그래서 인지 카투만두와 포카라 공항에는 빨간색의 성복을 입고 가족들과 함께 축제를 보내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인파들이 여행을 위해 모여서 한층 복잡하고 평소보다 들떠 있는 분위기 라고 했다. 거리에도 띠하르를 기념하여 많은 이벤트들을 도시마다 여는데 , 저녘에 도착한 카투만두의 고급 호텔의 로비에는 돈의여신 "럭시미"를 환영하는 의미를 가진다는 렁궈리를 바닥에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고 ,
렁은 색을 의미하는데 , 빛과 색을 의미하는
민속축제 띠하르 를 위한 공연으로 호텔에는 이미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있었다 . 우리 일행은 호텔에서 마련한 부페 식과 맥주 들을 마시며 앞으로 함께 산을 오를 일행과 인사도 나누고 인도식, 네팔식, 미국식등으로 잘 차례진 식사를 하면서 다음날 부터 이어질 산행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다음날, 포카라 로 네팔 국내 비행기를 탓는데 , 띠하르 축제로 유일의 공항이 무척 혼잡하기도 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무질서 속의 질서로 간신히 족히 3-40 년은 됐을 법한 비행기 를 4 시간을 기다려 30 분을 타고 , 이륙하자 마자 곧 착륙 하는 비행기 에서 멀리 맑게 개인 하늘에 홀연하면서도 신비하게 산의 꼭대기에 하얀 만년설을 쓴 안나푸르나의 위용을 보며 가슴 이 설래서 덜컹거리는 말년의 네팔 국내선의 불안도 잊은채 흥분된 마음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포카라 에서 버스로 두시간을 달려 나야폴 도착, 나야폴에는 짚차들이 대기중 , 첫날의 트레킹이 시작되는 울레리 까지 그룹을 내려놓았는데 그 길이 어찌나 돌 들로 이어진 험난하고도 수천길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길이었던지 … 차 체로 굴러떨어져서 히말라야 올라보기도 전에 죽을것 같아서 어찌나 기도 를 열심히 했던지 살려서 내려놓는 운전사들에게 감사가 넘쳤다. 고도 1960m 울레리에서 빗속에서 시작한 첫날 트레킹 이 해발 2860m 의 고라파니 에 도착 했을땐 이미 밤도 깊어서 헤드라이트에 의지하여 가슴이 터질것 같이 숨이 차오르고 , 좁고 수많은 돌계단들을 칠흑같은 어둠을 버텨내며 일행은 걸으며, 머리에 박혀버릴것 같은 , 무수히 빛나는 별들을 보았다.
고도에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오른 고라파니의 첫날 롯지 숙박은 밤이되어 차가워진 고도의 추운날씨 와 베니어판으로 어설프게 세워진 벽에 의지한채 침낭속에서 뜨거운 물병을 가슴에 껴안고 잠을 청해야 했다. 위안이라면 고도를 오르며 내 몸이 아직은 고산증세를 내지 않는다는 안도감, 멀리 의연히 부드럽게 , 많은 산들을 겹겹히 호위 받으며 가까워진 안나푸르나, 그리고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한식과 누릉지 숭늉과 티 를 히말라야 산에서도 먹고 마실수 있는것이 감지덕지 감사했다 . 한 무리의 젊은 여행자들이 기타를 치며 , 행복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롯지의 첫날 이 인상적이었다.
나야폴에서 소개 받은 6 명의 식사담당 포터와 8 명의 세르파 들이 헌신적으로 우리를 돌봐주었다.
애초 남편과 둘이 포터를 예약해서 개별적으로 오려고 한 계획에서 전문회사를 통한 그룹투어를 선택하길 너무도 잘 했다고 여겨진다. 사실 세르파들의 노련한 안내와 항상 따뜻하고도 세세히 제공되는 고칼로리의 한식은 여행 내내 압권이었고 한국에서 부터 마지막날 공항에서 까지 이어진 본사에서 파견인솔 하는 가이드 는 이번 여행의 훌륭한 책임자 였다 . 매일 정확히 알려주는 패킹지침, 날씨, 트레킹 경로 외에 고산병에 대비하여 건강을 끊임없이 꼼꼼히 체크 하고, 약을 챙기고 , 특히 그의 설명은 여행을 반으로 쉽게 했고 , 네팔에서 파견된 세르파들역시 거의 한국말 의사 소통이 완벽했고, 특히 세르파의 대장은 한국에서 10 년을 살아낸 젊은이로 한국말로 곳곳의 산을 설명하는 전문 가이드 였다.
다음날 새벽 다섯시 , 벌써 준비된 마늘 수푸와 뜨거운 보리차로 몸을 덮힌 후 , 3210 m 고지의 푼힐전망대에 올랐다 . 일별한 히말라야 설산의 짧은 일출과 더불어 눈앞에는 겹겹산들, 안나푸르나 , 남봉, 마차푸차례들의 산들이 서서히 파노라마로 드러났다 . 짙은 안개와 구름이 곧 걷어내는 그 산들의 위용에 가슴은 설레오나 …. 우리 그룹들은 서서히 고산증에 익숙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컨디션과 싸움이 시작됨을 느끼고 있었다 . 고라파니로 돌아와 조식 후 트레킹 시작 , 급격한 오르막 길의 대우랄리 를 죽을것 같이 올랐다 다시 외골수 급격히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반단티 를 지나는 정글 숲과 천길의 계곡들 을 지나 2680 m 타다파니 의 롯지에서 휴식의 밤을 맞는다. 어지간히 친해진 그룹들과 한잔의 위스키 그리고 돼기고기 삼겹살 파티 의 저녁 , 멀리 켭켭히 보이는 산. 산. 산 . 커다란 난로에 시뻘겋게 타오르는 장작 불에서 일행들의 얘기가 구수해지고 , 온 종일 오르고 내린 피곤을 따뜻한 물로 샤워 하고 뜨거운 물병을 껴안은 가슴으로 천년동안 자고싶은 잠이 쏟아졌다 . 타다파니 조식 후 물을 바꿔먹은 탓에 견디지 못하고 탈수로 산을 내려가는 사람이 생기고, 여기저기 조금씩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 긴장 이 몰려오고 앞으로 더욱 가깝게 우뚝 우뚝 나타나는 산들의 위용에 감탄도 하지만 그 수 많은 봉우리의 이름을 건성으로 …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오르막과 내리막 , 평지가 반복 되는 길을 걷는것 . 낮에는 쉼없이 걸으며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에 옷을 벗는것도 잠시 , 시시 때때로 흩뿌리는 비에 방수자켓을 걸치다 보면 어느새 빗방울은 굵어져서 우비로 행장을 바꾸면 어느새 나타난 햇살에 다시 배낭으로 옷들을 마구 껴넣고 일행에서 너무 뒤 쳐지 않게 애를 쓰며 따라 붙는다 . 촘롱에서 시누와 도착 하니 멀리 마차푸차례가 안나푸르나 를 재치고 앞으로 버티고 있다 . 축제의 휘날리 인지 민속공연이 시누와 에서 빗속에서 행해지고 우리 일행은 춥고 불편한롯지일 망정 흥겹게 춤판을 벌이는 그녀들과 어우러지고 , 짐짓 가이드의 눈치를 보며 맥주잔 을 서로 권한다 . 음악이 있고 산이 있고 꽁치김치찌개의 일품요리. 뜨거운 차로 마음을 덮히지만 비는 밤새내리고 얇은 베니어판 에 의지한 슬림핑 백은 꿉꿉하고 마침 나누어준 핫팩이 따뜻한 잠을 불러온다. 롯지생활은 서너명이 한방을 쓰기도 하나 무엇보다 밤이면 확 떨어지는 추위는 견디기 어려웠고 , 고산지대에서는 체온을 뺏기지 않기위해 샤워를 자제해야했는데, 무엇보다 긴 머리를 항상 털모자 속에 감추어 두었다 , 낮에는 내리쬐는 산의 돌계단을 수천개를 족히 오르내리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너덜 거리는것을 밤에는 두꺼운 배낭속에 뜨거운 물병을 껴안고 잠을 청해야하는 그 불쾌감이 “ 무엇하러 왔는고 하지만, 롯지의 그 추운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올려다 본 하늘에 은하수, 별들이 이마에 와서 꽂힐것같은 그 밤은 짐짖 모든 불편을 용서 하기에 충분했으며,
앞에서 뒤에서 커다랗게 버티고 선 만년 설산들은 가슴에 한가득 벅차오르는 그 무엇을 내 안에 턱 안겨주곤 했다. 걷고 또 걷는 시간들속에 일별하는 힘차게 내리 꽂는 폭포수들과 절벽들 , 산, 산,산 이 계속 버티게 힘을 주곤했다.
도반과 3200 m 고도의 폭포와 강이 흐르는 대우랄리 , 그리고 마차푸차례 베이스 캠프를 지나고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 이틀은 수많은 돌계단과 계곡,정글숲, 노새와 말, 나귀 들의 오물냄새와 그리고 수많은 순례자들과 포토들을 만나고 , 수많은 인종, 나라, 연령대가 다 ~~ 다른 이들과 헤어지고 다시 함께하고, 나마스테트 ~ 라고 그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따뜻해지는 정이담긴 무수한 기원들 . 어떤 롯지에서도 쉽게 보는 한국 사람들 , 한국산악회의 이름,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한국말들, 태극기 … 해외 트래킹에 열심인 한국사람들과 자주 반가운 인사도 나누고 , 사탕하나가 그리운 돌 계단에서 한움큼 사탕이나 쵸코렛을나눠 먹는다 . 그리고 끝없이 오르고 내리던 돌계단에 수많은 들꽃들이 엄청난 햇살에 신이 주신 원색의 색깔로 반기나 향은 짙지 않다, 어느 집, 어떤 돌, 어떤 길에도 꽃들은 지천이다.수많은 별과 일출들 특별히 마차푸차례의 일몰을 보고 눈을 돌릴수 없었던 그 엄청난 밤하늘 . 순례객들은 이제 설렘과 흥분으로 그 누구라도 가까워졌으며 , 내일 아침 만날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이미 눈 안에 가득 담았다.
그런데, … 그런데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의 롯지의 밤은 걍 ~~~ 추웠다 , 별은 쏟아지고 모든 옷을 다 껴입고 핫팩들로 중무장한 , 몸은 땀으로 젖고 식기를 반복하여 냄새가 나고, 고산에서 체온을 뺏기면 감기든다고 성화를 내는 가이드 지침으로 샤워를 며칠 걸른 몸은 불쾌 했지만 , 아 ~~~ 저 별 보려고 왔던고 ~~ 별은 빛나고 , 땅을 밝히던 그 별빛 , 핫팩을 껴안고 새벽 에 올려다 본 그 별빛을 잊을수 있을까?
트래킹 7 일차 아침에 만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 그녀의 위용은 7 일간 그저 걷고, 오르고, 내리고, 긴다리들을 건너 물을 빗긴 그 시간의 피로는 순식간에 거둬가고, 성취감. 걍 해냈다 는 기쁨으로 8000m 고도의 산을 바로 눈앞에서 일별 후, 조심히 하산 을 시작했다. 하산 길에는 마차푸차레가 마주 보고 안나푸르나가 뒤로 밀려간다.
나! 히말라야 다녀온 여자야!
데우랄리와 도반을 지나고, 다시 촘롱과 지누단다 로 하산. 지프 차를 타고 다시 돌산을 떨어져 죽을것같은 벼랑을 지나 나야폴에 도착하니 아수라장. 산을 오르는 인파와 떠나는 인파, 산을 안전히 내려왔다는 피곤하나 성취감으로 환한 얼굴 들, 산을 내려오니 그제야 아파오는 사람들 …
다시 아름다운 포카라 에도착 . Phewa 호수와 열대꽃들이 만발하여 하와이 섬으로 온듯한 호텔에서 , 그룹모두는 먼저 산을 내려와야 했던 분들과 해후를 한후, 비로소 안전히, 그리고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오래오래 몸을 씻어내며, 머리와 마음에는 방금전 두고온 설산과 빙하가 천천히 , 그러나 여전히 들리고 있다.
돌아온 호텔에서 한잔의 칵테일 , 많이 친해진 일행은 모두, 함께 행복하다 . 산은 우리를 한동아리로 묶어놨다. 얼마동안 우리는 시 ; 공이 다른 세계에서 안나푸르나를 같이 얘기 하며 살게 되는 것. 그것이 그
룹트레킹의 맛이다.
포카라에서 국제산악박물관을 방문 하여 자랑스러운 산악인들도 보고 , 태극기도 보며, 엄홍길대장의 네팔사랑 미담도 듣는다.
다시 카트만두의 호텔로 돌아와 휴식 후 시내 구경을 나섰다 . 카트만두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도시로 힌두교와 불교의 신비로운 유적지의 보루이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될만큼 매력적이었다 . 거리 곳곳에 불교 사원들이 많았는데, 버스로 지나며 힌두교 최대의 성지이자 시바신을 모셨다는 파슈파티나티 사원을 지나며 힌두교 전통 화장의식이 진행 되는지 바그마티 강의 일몰과 하얗게 피어나는 연기와 끝없이 쌓아올려진 힌두교불으ㅏ 의식을 위한 장작 더미를 보면서 , 타 종교에 대한 존경과 경이로움으로 잠시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여러 사원들이 카트만두 곳곳에서 볼수있으나 우리 일행은 티벳 불교의 중심지이며 ,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 스투파의 하나로 “ 보우드하나트 스투파 에 들려 수 많은 순례자들 과 함께 기도 바퀴를 돌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 일몰과 함께 황금빛의 스투파 를 보니 , 처음 카투만두를 도착했을때 단순히 보여지던 열악한 시내 환경 과는 달리 , 수 많은 순례자 와 함께 카투만두의 많은 사원들이 그저 종교적 건축양식물 의 의미보다는 불교의 깊은 철학적 의미와 인간들의 간구와 깨달음 을 상징하는 신성한 곳으로 다가 왔다 . 그곳에서 순례자들의 진정, 아니 모든 인간이 숙연해지는 종교적 진정성이 가슴에 아스라히 전해진다. 보우드하나트의 멎진 돔이 훤히 보이는 고급식당에서 네팔 전통 음식과 음악… 더 이상 좋을수 없는 아름다운 밤!
다음날 호텔 첵 아웃 후 , 바산타부르 덜발 광장에 갔다 . 이곳 역시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불교외 힌두교의 유적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2015 년 지진으로 파괴되어 한창 복원 중인 칼 바이러브 사원과 쿠마리의 집을 관광했는데 , 이미 많은 인파들이 줄을 서서 그녀와 일별이라도 하는 축복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는 대중을 내려다 볼 뿐 아무 말이 없었지만 …. 우리각자는 염원 하나씩을 쿠마리 집 이층창문을 통해 모습을 보인 그녀에게 간구하고 그녀의 축복을 빈다 . 아 ! 그녀를 직접 보다니!
쿠마리는 네팔의 힌두교와 불교의 전통이 융합된 독특한 문화와 종교적 관습의 상징하며 그 신비로움이 세계적 관심을 모으는데 , 주로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서 예식이 행해지며 네와르족의 불교 가문에서 태어난 어린소녀를 엄격히 선발하여 처녀여신을 뜻하는 쿠마리로 삼는다 . 쿠마리는 힌두교의 여신 탈레주의 화신을 상징되며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며 주요 행사와 의식에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악령을 물리친다 한다
쿠마리 사원을 나와 그룹은 인력거를 타고 시내 구경을 하며 타멜 거리로 갔다 . 타멜 거리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을 연상캐 하는 , 여행자들을 위한 기념품, 각종 카페와 식당 , 마사지 샵등 이 있는 카트만두 제일의 여행자 거리로서 활기가 넘치고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그 수많은 인파를 요리조리 해치고 인력거 꾼이 내려준 그 음식점에서 우리 일행은 마지막 석별의 정도 나누고 ,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성공적으로 다녀왔다는 패를 받고 사진도 한장 남기고 …
아마 다시는 가지 못 할듯하다, 좀 더 젊은 나이에 왔더라면 … 하면서도 다음번 산 ,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와 킬리만자로 를 맘에 심는다 ㅎ
내 자식들을 조금더 젊은 나이에 함께와서 함께 걸으며, 함께 고생도 하고, 함께 기쁨도 느끼게 해주었다면 ..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 그 땐 그저 살기 바빴던 내 젊은 시절의 그 시간들을 잠시 생각 해본다.
안나푸르나 산도 좋았지만 , 카투만두 시내의 큰 매력을 아마도 오래 기억할듯하다. ㅎ
후기: 기행문은 여기서 마무리 하고….
한국가이드 임 우람님은 이번 여행에서 완벽한 가이드의 역할,저녁 에 다음 날 일정의 브리핑과 아침 점검과 스케줄 확인등 하는 보통 가이드 분들이 하는 가이드 뿐 아니고 여행내내 여기저기 불편을 호소하는 멤버의 식사외에 모든 일상을 챙기고 비상약으로 간호는 물론 일행중의 의사와도 의논해서 환자를 돌보게 하는 등 전 멤버의 안전한 등반을 위해 산행 내내 강한 책임감과 자연스런 분위기 속에 전원을 힘든 산행이나 즐겁게 , 낙오 없이 이끌기 위해 끊임없이 보살피고 여행을 쉽게 격려 하는등, 문화 관광에서 볼수 없는 차별화된 리더쉽을 발휘하여 가장인상에 남는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잘 하엿지만……그 중에서도 , 그가 언제나 강조한 갓길에 붙지 말고 말 과 나귀 나 사람을 피하고 천천히 언제나 안쪽으로 걸으라고 매번 강조 강조 했음에도 불구 하고 더구나 그가 가장 갓길에서 대오가 빠져나가지 않게 인솔한 내내, 찰라적으로 남편의 발뒷꿈치만 보며 내려오는 순간 작은 조약돌이 신발에 닿으며 가방무게로 옆으로 맥없이 기울어지면서 바로 낭떠러지로 넘어져 ,아차 하는 순간 굴러내려갈 순간이엇는데 몸을 날려 나를 구해 냈다는 …등골이 오싹 할 순간을 잘 신속하고도 노련하게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 감쪽같이 길로 건져내고 진정시키고 큰 차질 없이 일행을 안전히 하산케 한 그의 순발력에 무한 감사드립니다. 자칫 큰사고로 이어질수 있었는데 , 그의 세심함과 순발력이 일행이 이 사건으로 늦어지지않게 금방 수습하여 안전 하산을 마쳤으며 모두에게 안전의 경각심을 주기도 했습니다.
다음번 예베레스트 산행에 혜초 불랙리스트에 재발 넣지 말것을 부탁 드렸습니다